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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4일 일요일

‘시민 저널리즘’이란

‘시민 저널리즘’이란
언론-시민 유기적 결합 현안 적극 개입
입력 : 1996-04-10  00:00:00   노출 : 1996.04.10  00:00:00
미디어오늘 | webmaster@mediatoday.co.kr   
15대 총선보도 현장 조사’는 궁극적으로 시민저널리즘의 착근에 목적을 두고 있다. 시민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고 그러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탐색하는게 이 조사의 목적이다. 외국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생경한 ‘시민저널리즘’을 소개한다. 

시민이 주도하는 선거보도는 불가능한 것인가. 언론의 선거보도에 쏟아지는 비판은 궁극적으로 선거보도가 시민민주주의에 전혀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시민은 배제한채 언론과 후보자들간에만 쟁점과 이슈를 주고 받는식의 보도 양태를 보임에 따라 결과적으로 ‘시민’이 없는 선거, 나아가 참여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위한 움직임은 미국의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현재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90년대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른바 시민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는 아직 초보적이다. 일부 언론사는 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수입이나 영향력 면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른바 시빅 저널리즘(Civic Journalism), 혹은 퍼블릭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으로 불리는 시민저널리즘은 한 마디로 언론이 객관보도라는 철학을 벗어나 시민들을 직접 조직하고 지역사회의 현안이나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비단 선거보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지역사회의 관심사와 쟁점도 모두 시민저널리즘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같은 논의는 미국지역에선 ‘운동’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시민저널리즘은 지역사회, 언론사, 시민등 3요인을 주체로 설정한다. 언론사는 지역사회를 단순한 취재대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토론을 해야 하는 적극적인 공간으로 해석한다. 시민들도 수동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참여자로서의 기능에 비중을 더 둔다. 뉴스를 보도하는 것이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언론’이었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지역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갖도록 고무하는 작업까지 떠 맡아야 한다는 것이 시민저널리즘에서의 ‘언론’기능이다. 

가령 선거 과정에서의 여론조사 문제를 보자. 기존에는 대상자들에 대한 일회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곧바로 언론에 보도했다. 그러나 시민저널리즘은 통상적인 여론조사 방법을 탈피해 일차 조사를 끝낸후 대상자들에게 현안에 대한 토론자료등을 제공하고 서로의 관점을 비교한 다음 여론조사를 다시 실시한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지역현안에 깊이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기자들도 더 이상 발생한 사건만 보도하는 ‘단순전달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공모임을 조직하고 여론조사, 원탁회의 등을 통해 언론이 지역사회와 시민을 연결하는 강력한 연결고리로 자리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시민저널리즘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신문이 이미 1백 70여개에 달한다. 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문사들의 경우 대부분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경영 수입면에서도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러한 시민저널리즘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언론의 신뢰성을 해치고 개인의 주관적인 방향설정으로 인해 언론매체를 편파적인 논쟁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저널리즘 옹호론자들은 언론의 객관성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신화일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블로그 포맷 vs 신문의 포맷..승자는?

블로그 포맷 vs 신문의 포맷..승자는?

블 로그냐 신문이냐. 흥미를 끄는 주제임에 틀림 없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뉴미디어가 올드미디어를 대체할 것이냐는 주제를 놓고 전 세계 블로거들과 미디어계 종사자들은 뜨거운 논쟁을 펼쳐왔습니다. 여전히 'ing'인 상태이긴 합니다만 요즘 들어선 대체로 ‘보완’ 관계로 정의하는 논자들이 많아지는 추세로 보입니다. 

제가 구독하는 블로그 가운데 publish 2.0이 라고 있습니다. Scott Karp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랑 관심사가 비슷한 블로거라 그의 포스트를 매일매일 주의 깊게 읽는 편입니다. 얼마전에 소개했던 ‘블로그는 콘텐트 매니징 시스템에 불과하다’라는 글도 이 친구의 포스트를 번역한 것입니다. 

Scott Karp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publish 2.inc의 공동 창업자입니다. 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블로그가 Publish 2.0이고요. 이전에는 Atlantic Media의 디지털전략 Director로 일했습니다. 나름 이 분야에서 통뼈가 굵은 분이라고 소개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와 관련한 NYT 전망

Scott Karp가 최근 NYT의 블로그뉴스 서비스인 Bits blog 에디터인 Saul Hansell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블로그 포맷과 전통적인 언론사 기사의 포맷에 대한 NYT의 전망을 듣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질문은 “블로그와 같은 새로운 온라인 포맷이 기자들에게 더 많은 일을 만들어내고 있느냐”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Saul Hansell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나 는 과거부터 블로그가 뉴스레터와 닮았다고 생각해왔다. 콘텐트가 아니라 포맷의 측면에서. 일부 뉴스레터는 대단한 저널리즘을 담고 있기도 하고 일부는 코멘트이기도 하며, 일부는 단지 게시판 정도에 머무르기도 한다. 나에게 블로거는 뉴스레터 작성자 이상의 의미는 아니다.

우리 지면 안에는 다양한 포맷의 기사들이 항상 존재한다. 뉴스페이지에는 딱딱한 뉴스도 있고, 피처나 뉴스 분석, 칼럼도 있다. 오피니언 면에는 칼럼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프레임워크는 독자들에게 사건의 이해를 돕는 수많은 방법을 제시한다. 블로그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변수이다. 예를 들면 속도나 사용자의 참여, 링킹 등의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블로그는 그것의 등장 자체가 우리의 과거와 단절할 정도는 아니다.

작업 플로우 측면에서, 인터넷은 더 많은 작업을 만들어냈다. 오디오, 비디오, 링크 그리고 가장 중요한 24시간 뉴스 사이클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 가지 면에서 좀 더 쉬워진 것이 있는데 내가 Bits에서 풀 타임으로 근무한다는 점이다. 내가 흥미로워하고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해 매일 기사를 쓰고 있지만 난 페이퍼 신문에서 출입처를 가진 적은 없었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 NYT에 Bits의 최고 기사를 발행하고 있다.“


Scott Karp는 “블로그는 그것의 등장 자체가 우리의 과거와 단절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언급에 주목을 하더군요.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블로그의 등장이 기존 언론의 과거와 단절할 정도로 혁신 혁명적이지 않다는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송고된 블로그를 NYT 지면에 발행하고 있는 당사자의 냉철한 분석이기에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 제 포스팅했던 바와 같이 블로그는 아직 기존 언론의 역사를 뛰어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댓글을 통해 쌍방향 소통문화를 창조해내고, 속보성을 보완하는 데 블로그가 기여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디어의 민주화와 미디어 간의 촘촘한 네트워크 구축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평가받아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진화와 파괴를 유발한 ‘미디어의 촉매’로서의 역할도 인정돼야 합니다. 

블로그가 올드 미디어를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존 언론을 대체할 수 있다’는 낙관적 상상만을 고집하는 건 아직 섣부르다고 봅니다. 오히려 한 독자의 지적처럼 기존 언론과 뉴미디어가 어떻게 역할을 보완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선 생산적이지 않나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 금까지 드러난 정향을 놓고 예측해 보건데, 블로그는 당분간 기성 언론의 강력한 보완재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강력한 보완재는 올드 미디어의 구태적 보도 및 취재 관행과 구시대적 보도 포맷을 상당 부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이신문을 몰살시킬 정도의 ‘저널리즘 대체재’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블로그 기반 미디어를 운영하는 전문가들조차도 기대만큼 위협적이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는 게 인정해야 할 현실입니다. 

블로그의 진화가 미디어의 진화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다 같이 진지하게 지켜봤으면 합니다. 

블로그는 저널리즘 수행할 수 있을까?

“팸플릿·뉴스레터·신문·잡지·라디오·영화·텔레비전·책 등을 통하여 대중에게 뉴스·해설·특집물 등을 수집·준비·배포하는 활동.”(브리태니커)

“Journalism is the discipline of gathering, writing and reporting news, and broadly it includes the process of editing and presenting the news articles. Journalism applies to various media, but is not limited to newspapers, magazines, radio, and television.”(위키피디아)


저널리즘에 대한 일반적 정의입니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소식을 전달하는 행위를 우리는 저널리즘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대로라면 뉴스를 전달하는 일반 행위 전반을 가리키는 다소 기계적인 정의에 머무를 수밖에 없죠.

저 개인적으로는 저널리즘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이란 대중에 알릴 목적으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진실 혹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반 행위.”

단순 배포 행위 전반을 저널리즘이라고 정의하기엔 이미 저널리즘은 멀리 진화해 있는 상태입니다. 언론 및 출판의 목적이 단순히 배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숨어있는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목적이자 정신이고 정의라고 생각합니다.(이건 저의 정의일 뿐입니다.)

저는 이 포스트의 제목을 블로그의 저널리즘 가능성 즉 블로그로 저널리즘을 수행할 수 있느냐로 잡았습니다. 새로운 미디어로 조명 받고 있는 블로그가 과연 저널리즘의 일반적 정의에 부합할 수 있는 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겠지요.

블로그라는 단어의 탄생 초기 블로그는 개인적인 일상사를 기록하는 ‘온라인 일기’ 정도로 인식됐습니다. 이후 뉴스 기반으로 블로그를 활용한 것은 드러지 리포트였습니다.(위키피디아) 일종의 미디어로서 진화 가능성을 확인시킨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온라인 일기에 불과하던 블로그가 공적 활동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저널리즘 기능을 일정 부분 수행하는 위치까지 발전했습니다.(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프라인 신문을 떠난 기자들이 블로그로 뉴스를 전달하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블로그라는 툴의 개방‧확장성과 상호작용성(RSS나 트랙백)이 신문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지요.

블로그 이용동기와 인식의 차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블로그는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 Publish2.0을 운영하는 Scott Karp는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블로그는 “콘텐트를 매니징하는 시스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이 질문이 다음과 같이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으로 블로그가 더 많은 기자들에 의해 활용될 수 있을까? 혹은 블로거들이 저널리즘으로 정의될 수 있는 행위를 시작할 것인가?”

결국 저널리즘을 목적으로 블로깅을 하는 블로거가 더 늘어날 수 있느냐가 블로그 저널리즘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라는 것이죠. 단순히 싸이월드 미니홈피처럼 블로그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룬다면 블로그 저널리즘은 매우 좁은 범위 안에서 수행될 것입니다. 저널리즘을 목적으로 블로그를 활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기존 저널리즘의 보완하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한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블로그 이용동기에서 저널리즘 동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블로그를 통한 저널리즘 수행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블로그를 이용하는 주체의 문제로 귀결시켜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블로그는 분명 대중을 상대로 한 Publishing 툴로서 매력적인 시스템입니다. 신문보다 훨씬 간편하고 보기 편리하며(모바일 기기와 접합됐을 때), 상호작용적입니다. 매스미디어의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신문 이상의 배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상파라는 방송의 일방향 속성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툴임에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시민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블로그를 개설한 사람이라면 목적의식적으로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할 경우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블로고스피어입니다.

관건은 저널리즘을 목적으로 한 블로거가 많이 늘어날 수 있느냐입니다. 예전 글을 통해 저는 기자들이 좀더 많이 블로고스피어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블로그를 더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들이 선도적으로 저널리즘의 모범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저널리즘 수행 공간으로서 블로고스피어가 초발 단계에서 건강하게 진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블로고스피어는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돈 벌이에 혈안이 돼 보도자료를 무작위로 베껴오거나 트래픽을 늘리기 위해 저작권을 무시하고 기존 언론의 기사를 무단 카피하는 행태들이 좀체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못 ‘싸이 저널리즘’으로 회귀가 우려되는 시점입니다. 저널리즘 툴로서 블로그가 한 발짝 나아가지 못하고 싸이의 재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널리즘 툴로서 블로그를 더 많이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미아를 찾습니다

저널리즘의 어원, 역사, 특질과 문제점

Journalism(저널리즘) 

언론활동이나 그러한 활동을 하는 직업분야를 뜻하는 말로 매스미디어를 이용하여 공공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취재.보도하고 이에 관한 의견제시등의 논평을 하는 활동을 이르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시사적 문제나 사실에 대한 뉴스 등을 취재.편집하여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체인 신문, 잡지, 방송 등을 통해 보도, 논평, 해설 등을 사회.공중에 전달하는 활동, 또는 이러한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 분야를 말한다. 저널리즘은 '매일매일 기록한다.'는 뜻의 라틴어'diurna'에서 유래하여 이 단어가 프랑스어 주르날(journal)이 되고 정기간행물을 뜻하는 영어 저널(journal)이 된 후 여기에 행위,주의,제도,직업 등을 뜻하는 접이사 -ism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이와 같이 어원상, 저널리즘이란 곧 신문.잡지 등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는 직업활동이라는 뜻만을 가기고 있었으나 방송매체의 출현 이 후, 방송이 신문이나 잡지처럼 시사적 문제에 관한 보도와 논평 등의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방송 또한 저널리즘 분야에 포함됐고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활동이나 분야를 통칭하여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게 됐다. 좁은 의미로 저널리즘을 사용할 때는 시사적문제에 대한 보도와 논평.해설 등의 활동이나 이러한 활동 분야만을 지칭하고 오락, 광고 등의 활동은 제외한다. 저널리즘에서의 기록이란, 매일 혹은 정기적인 기록이라는데 그 특질이 있듯 저널리즘 또한 정기적 혹은 주기성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으로써 현대인이 적응할 환경을 제시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저널리즘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을 가리켜 저널리스트(journalist)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미디어기업에 고용되어 취재, 보도, 해설, 논평등의 직무에 종사하는 기자, 카메라맨, 아나운서, 캐스터, 주간, 편집자등을 말하며, 프리랜서로 특정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을 프리 저널리스트(Free Journalist)라 한다. 


어원
저널리즘의 어원이 라틴어의 'diurna(나날의 간행물)'에서 유래되었다는 점과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사회적으로 정착한 것이 신문과 잡지가 대중전달 활동의 왕좌를 독점하고 있던 19세기 중반 무렵이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본래는 좁은 의미로 한정되어 사용되던 것이 최근에 와서 오히려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넓은 뜻으로 말하는 저널리즘도 매스커뮤니게이션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매스커뮤니게이션은 대중전달의 사회과정 전체를 가리키는, 종합개념인 데 비해 저널리즘은 그 일부분 또는 하위개념(下位槪念)이며, 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미디어(매체) 활동의 측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저널리즘의 역사 

저널리즘의 발생은 고대국가의 신문 유사물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저널리즘이라는 의미로서의 모습을 보인 최초의 시기는 17∼18세기 시민혁명기로 이 시기 근대적인 신문, 잡지가 출현함으로써 근대 저널리즘이 성립되었다. 근대저널리즘은 신흥 시민계급에 의해 형성되어 봉건적.절대주의적 지배체제의 탄압에 대항하는 무기이자 시민계급의 여론과 역량을 결집하고 사회를 변혁키 위한 도구로 사용됨으로써 지배계급과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시민혁명 과정에서 시민계급이 부르짖던 중심적인 구호는 ‘언론출판의 자유 획득’이었으며 이러한 요구와 주장의 촉구 및 그 쟁취를 위한 투쟁이 저널리즘의 활성화를 촉진하게 되고 저널리즘의 활성화는 다시 시민혁명을 지원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근대저널리즘은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정보의 전달과 함께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적극적인 의견표명과 언론을 통한 투쟁이라는 기능에 중심을 두게된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달 및 이로 인한 노동자의 급증에 따라 저널리즘은 새로운 노동 대중을 독자로 개척, 그 활동 저변을 확대하였으며 기술의 발달, 도시로의 인구집중, 생활수준의 향상, 교육의 기회 확대 등의 역사적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한 저널리즘은 대량의 소비자와 자금을 확보하여 자본주의적 기업화를 이루게 된다. 이 후 19세기 말~20세기 초 자본주의 독점단계로의 발전과 동시에 저널리즘은 근대저널리즘에서 현대저널리즘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현대 저널리즘의 특질과 문제점 
현대저널리즘의 특질은 기업성과 오락성 및 권력과의 유착성에 있다. 오늘날 언론 및 방송등 매스미디어 사업은 대자본과 많은 인력 등 대량의 자산이 소요되는 업종이므로 격한 경쟁속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여 생존키 위해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원칙에 크게 벗어 나기 어럽다. 이에 저널리즘의 기본적 기능인 정보 및 의견의 사회적 전달기능 또한 상품화 되어 최대 다수의 최대 관심사가 될 수 있는 정보와 광고주 및 이해집단의 반발을 고려한 선택적 의견 제시 위주의 취재 보도가 이루어 지게 되어 근대저널리즘에서 보여지던 일정한 나름의 사상이나 주의, 주장, 당파적 입장이 많이 약해지고 상품 구매자로서의 평균독자들의 일반적 관심을 대상으로 한 객관주의 보도 혹은 불편부당의 보도가 일반적인 보도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 저널리즘의 기업성은 저널리즘이 자본주의 체제에 의존케 되면서 스스로를 체체의 옹호자 이자 수익자로 변모케 만들었고, 취재 및 보도 행태가 수구적, 체제유지적 성격을 띄는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현대저널리즘을 근대저널리즘의 ‘퍼스널 저널리즘’에 빗대 ‘인퍼스널 저널리즘’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현대 저널리즘에 추가된 오락성은 오락제공을 목적으로 창출된 영화, 라디오, TV등의 뉴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기존의 신문, 잡지, 출판등의 독자감소 및 쇠퇴와 영향력 감소라는 문제점의 대안이자 생존수단으로 차용된 특질로서 일면 불가피한 현상일수 있으나 가능한 많은 독자확보를 위해 다양한 대중의 관심분야와 취미의 반영하려다 저널리즘의 비판기능이 축소되고 인기에 영합하는 경향이 만연하여 오락 일변도의 보도 및 백화점식 나열 보도등이 유행하는 폐단을 낳게 되었다. 현대 저널리즘의 이러한 두가지 특징은 사회의 공기라는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인 사회정화 및 정의구현의 역할을 약화시켜 미디어기업 또한 기사나 보도라는 상품을 독자라는 구매자에게 판매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유사한 모습으로 변질시켜 놓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매스미디어는 그 본질적 특성상 정부정책 및 사회제도의 비판, 정치적 여론형성등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바, 정치권력 및 지배세력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대자본이 투입되는 사업 성질상 사주 또는 경영자 역시 감독 규제기관인 정부 및 정치권과의 관계에 있어 대립보다 상호 협력의 관계를 유지함이 서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므로 손쉽게 유착, 서로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해주는 모습을 띄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민주주의의 초기의 국가들과 과도기적 격변기에 속한 시기에 있어 현대저널리즘이 갖게 되는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지식 검색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BY 이위재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1997년 6월 하버드대학에 모인 26명의 언론인들은 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언론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언론사는 저널리즘의 본질보다 경영과 수익에 더 신경을 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데 이들은 동의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단지 매체를 운영하는 회사의 위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그것은 민주적 시민사회의 몰락을 뜻하는 신호이며, 인간이 진정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빛이 사라져간다는 불안의 반영(反影)이다. 이 빛이 환하게 인간세상을 비추어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도록 해주던 시대는 행복했다. 언론은 세계를 새로우면서 친숙하고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싸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미 스크립사에서 내놓는 신문 발행인란에서는 <빛을 비추어주면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이란 강령이 적혀 있다.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위원회(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 발족했다. 2년에 걸쳐 3000여명이 토론에 참여, <지금 우리에게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했다. 그 흔적을 뉴욕타임스 워싱턴 지국장을 거쳐 현재 하버드대 니만언론재단 큐레이터인 빌 코바치와 LA타임스 미디어비평 담당 기자 톰 로젠스틸이 대표 집필해 한 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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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한 정보에 대해 목말라 있다. 친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 후 주고받는 대화는 종종 <혹시 그거 알아> <그 얘기 들었어>일 것이다. 이미 인간은 뉴스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 흐름이 막히면 어둠이 내리고 불안이 커진다. 세상은 적막에 빠져들고 사람들은 고립되어 있다는 답답함으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뉴스는 인간이 삶을 지탱하고 친구 사이를 유지하며 인간 관계를 넓히는 데 필요한 자양분인 셈이다. 이 뉴스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미디어, 언론이라고 부른다.
포괄적인 의미로서 저널리즘의 목적은 <시민에게 그들이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 신성한 대원칙은 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해 참정권을 가진 시민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데 존재 의의가 있다는 설명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언론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언론이 정보통제자로 기능할 수도 있고, 잘못된 뉴스를 사실인 양 포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널리즘이 주는 정보는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진실>이라는 다소 혼란스런 원칙을 고수하는 여정이다. 진실은 숨어있는 사실을 끄집어 내고, 겉으로 보기에 아무 상관없는 사실들의 논리를 짜맞춰 이해시키며, 나아가 사람들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나침반이다. 사실(fact)을 성실하게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사실에 대한 진실(truth about the fact)을 보도하는 게 필요한 때다.
사견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범벅이 된 기사를 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기자들의 본래 임무다. 중요하지만 아직 거칠고 정리되지 않은 정보들을 흥미 있고 관련성 있는 기사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저널리즘은 어느 누구보다 시민들에게 충성해야 한다. 이는 직업적 자부심 이상의 것이며, 시민들과 맺은 사실상 묵시적 계약인 셈이다.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어 대중의 비판과 논평을 위한 공개 토론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성숙된다.
오늘날 언론사 간부들은 회사의 경영에 민감하다. 그들의 해당 연도 성과는 바로 당해 수익과 종속관계에 놓여 있으며 미국 언론에도 이런 분위기는 만연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바로 언론사의 젖줄이자 생명유지장치다. 뉴욕타임스 광고부가 뉴스가 특별히 많은 날은 과감히 광고를 포기하는 전략을 택하는 풍경은 꿈같은 얘기다.
그러나 독자는 단지 <고객>이 아니다. 신문사는 <신문이란 상품>을 판다기 보다 진실을 알려주어 사람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올바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서 본지는 대중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물질적 이익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진실을 전달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저널리즘은 그래서 끊임없이 검증(verification)을 거쳐야 하며, 취재 대상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기자는 포괄적이고 균형잡힌 뉴스를 만들어야할 의무가 있다.
저널리즘이 오락, 선전, 선동과 다른 부분은 바로 검증의 규뮬을 지닌다는 점이다. 투키디데스가 2000년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문에서 밝힌 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의 사실 보고와 관련해…..나는 나에게만 일어난 이야기를 쓰지 않고 나 자신의 일반적 인상에 이끌려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또 내가 묘사한 사건이나 목격자로부터 듣고 가능한 한 철저히 점검한 사건의 현장에도 직접 가보았다. 그랬는데도 진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사건에 대해 목격자들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한쪽 입장에서 편파적인 발언을 하거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해 진술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상황과 해석을 덧붙이는 일을 서두르기보다는 <통합과 검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소문. 빈정거림, 중요하지 않은 것들, 그리고 편견을 추려내고 그 이야기에 관해 진실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절실하게 부딪히는 고민은 <물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른 매체가 먼저 다룬 뒤 만회하기 위해, 혹은 그런 낌새가 보일 때에 종종 기자들은 무리해서 불확실한, 검증이 덜 된 정보를 기사화시키다 낭패를 겪곤 한다.
경쟁에서 지는 순간, 상급자들이 쏟아내는 히스테리는 기자들의 정서를 황폐하게 한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에서 모멸감을 자주 당할 수록 수명은 단축되고, 결국 이를 피해 보기 위해 <일단 지르고 보자, 아님 말고>라는 무책임한 태도가 양산되는 구조다. 사실 언론사 간의 이런 무한경쟁 구도 속에서 진실에 대한 책임감을 갖자고 외쳐대는 모습은 한가한 담론일 수 있다.
그래도 브레히트가 언급하듯 진실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은 한낱 바보지만, 무엇이 진실인 줄 알면서 침묵한다면 이는 범죄자다. 기자가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언론인은 개인의 양심에 따라야 한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발산한다. 기사는 기자의 총제적 본질이며, 부당한 외부의 압력이나 왜곡된 사실을 강요받았을 때 언제든 온 몸을 던져 자신의 정체성을 방어해야 한다. 기자는 언제든 사표를 던질 각오를 갖고 일해야 한다는 게 미국 언론인들의 권고다.
언론이 결국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권력의 독립된 감시자다. 연방 대법원은 1971년 <국방부 기밀문서(Pentagon Papers)>라 불리는 정부의 극비문서를 <뉴욕 타임스>가 보도할 권리를 옹호하면서 <수정헌법 제1조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기본적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보호를 자유 언론에 부여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통치받는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치 섞인 표현으로 언론의 신조는 <고통받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말이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통해 우리는 저널리즘이 일종의 지도 제작, 시민들이 사회를 항해하기 위한 지도를 제작하는 사명을 띤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효용이며, 경제적 존재 이유다. 기자란 이토록 숭고한 직업임에도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새로운 고민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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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웨스트 윙>의 작가이면서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 각본을 썼던 애런 소킨이 대본을 쓴 HBO 드라마 <Newsroom>은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볼만한 작품이다. 2012년 첫 방영을 시작, 시즌2까지 나왔다. 콜드플레이 노래 <Fix You>가 흐르는 이 장면은 마지막까지 사실에 충실해야하는 게 저널리즘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이란 점을  웅변하고 있다.
http://blogs.chosun.com/wjlee/2014/08/05/%EC%A0%80%EB%84%90%EB%A6%AC%EC%A6%98%EC%9D%B4%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저널리즘(Journalism)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미디어와 많은 관련성이 있는 저널리즘은 미디어의 폭 넓고 급격한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확장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개념 역시 변하는 것이라면결코 변하지 않는 저널리즘의 근본적 속성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고그에 따라 변하는 상황 속에서는 또 어떠한 속성과 의미가 새롭게 개념화되어야 하는지 살펴봐야할 것이다.

 먼저 저널리즘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 'diurna'이다. ‘매일 매일 기록한다.’는 뜻의 이 단어는 프랑스어 'journal'으로 발전하고이것이 또 영어로 발전한 뒤접미사 '-ism'이 붙어 생겨난 말이다즉 이러한 어원을 바탕으로 현재 연세한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신문잡지,방송 등 인쇄전파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활동이나 사업.’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우병동정일형김용성, 2007).

 저널리즘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살펴보면한국언론연구원에서 발행한 매스컴 대사전의 언론활동이나 이러한 활동분야로서 시사적 문제에 대한 뉴스 등을 취재편집해서 신문잡지,언론 등을 통해 보도논평해설 등을 하는 활동또는 이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 분야(한국언론연구원 편, 1993).’나 방송문화진흥회에서 발행한 방송대사전에서 정의한 시사적인 정보현상의견을 사회에 널리 전파하는 활동(방송문화진흥회 편, 1990)’ 등이 있다.

 위의 많은 저널리즘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볼 때저널리즘이란 것은 크게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이 말대로라면 축구 중계나오락 프로그램도 저널리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전달되는 메시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미디어의 측면에서도 전화나, e-mail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닌 대중을 대상으로 전달하는 매스 미디어를 의미한다다만최근 급격한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서 매스 미디어로 분류되지 않지만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는 뉴 미디어가 등장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즉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이라는 활동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떠한 것인지또 이에 따라 미디어는 어떻게 이용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단순히 기존의 신문과 방송을 이용한 정기 간행물이라는 정도의 좁은 의미로 저널리즘을 설명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다양한 특성과 영향 등을 간과하는 결과이고따라서 저널리즘에 대한 폭넓은 인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우병동정일형김용성, 2007)

 그렇다면 먼저 저널리즘이 다루는 메시지는 어떠한 것인가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뉴스가 저널리즘의 메시지가 된다하지만 뉴스라는 것은 기존 매스 미디어를 저널리즘의 모든 주체라고 봤을 때의 용어이기에구체적으로 저널리즘이 다루는 메시지가 어떠한 지 살펴봐야한다학자에 따라 저널리즘의 요소나 기능을 분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개념이 진실성과 시의성또 독립성이다.

 진실성은 저널리즘이 다루는 메시지가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닌 진실 탐구는 창작된 문화 예술 영역에 속한다그런데 저널리즘에 있어서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바탕으로 의견과 입장이 들어가기도 한다하지만 그러한 의견과 입장 역시 사실을 바탕으로 나온 결과이어야 한다물론사실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저널리즘 주체의 의견이 진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진실은 쉽게 진실이라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하지만 기자인 우드워드(Woodward)의 최선을 다해 얻을 수 있는 진실에의 한 해석”(Brooks et al., 1988. 20쪽에서 재인용)이라는 진술처럼 저널리즘 주체는 진실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은 활동 주체의 진실을 찾기 위한 윤리성이 요구된다이러한 윤리성의 문제가 최근 미디어의 상업화로 인해 훼손되고 있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널리즘 붕괴’, ‘저널리즘 위기라는 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의 진실성을 통해 저널리즘의 존재 목적을 찾아낼 수 있다사람은 누구나 진실을 탐구하려는 욕망이 있다하지만 커져가는 사회 속에서 모두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저널리즘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혹은 집단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또한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한 번에 다수에게 메시지 전달이 가능해지면서 현대적 저널리즘이 탄생했다미디어를 이용해 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진실을 탐구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리적 이유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진실을 가리려는 권력과 무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에는 다음 특성인독립성이 요구된다.

 그래서 저널리즘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독립성이다다른 말로는 자율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는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진실성을 지키기 위한 요소가 된다저널리즘이라는 활동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 시작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저널리즘 주체 스스로 내린 판단과 스스로 찾은 사실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형성된 메시지이어야 한다.

 다음은 시의성이다저널리즘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예전의 지식을 다시 알리는 것은 단순한 역사를 알리는 것이다새로운 것이야 말로 저널리즘이 갖춰야할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이 새로운 사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최신성 혹은 즉시성을 말하지만 꼭 시간적인 의미는 아니다예전의 사건이나 이슈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진실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 역시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대표적으로탐사 저널리즘은 기존에 감춰져 있던혹은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이민웅, 2003).
정리해보면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은 주체가 진실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이는 기존의 전통적으로 정의하던 저널리즘에서 가장 핵심만을 뽑아내어시대나 상황에 관계없이 저널리즘이 가지는 속성인 것이다문제는 미디어의 변화로 이러한 속성이 나타나는 채널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에 대한 혼란이 일어나고과연 저널리즘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따라서 지금까지 저널리즘이 무엇인가를 정의했기에 이제는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할 차례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오는 미디어의 변화란 무엇인가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디지털과 인터넷이다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방식은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을 대체했다.디지털로의 변화했다는 것의 의미는 그 정보 처리와 전달 속도가 현저하게 빨라지고아날로그 방식에서는 함께 취급할 수 없던 소리영상이미지텍스트 등이 함께 처리되어 방송과 통신 등의 영역 역시 무너지게 하는 변화를 이끌고 왔다는 것이다(김병철, 2005).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에서의 변화를 가져왔다정보의 교류가 다수와 다수가 비동시적이고 개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즉 전 세계의 사람들이 정보를 동시에 즉각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또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또한 기존의 미디어와 다르게 인터넷은 접속하는 모든 주체가 정보와 메시지를 창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누구나가 미디어를 소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디지털과 인터넷의 발달은 다양한 플랫폼의 미디어를 등장시켰다기존의 한정되어있던 미디어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고따라서 늘어난 미디어의 채널만큼 대중의 미디어 집중도는 떨어지게 되었다이에 따라 저널리즘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기존 미디어의 파워는 약해졌다늘어난 저널리즘의 주체가 늘어난 신문사나 방송사의 숫자라서 저널리즘 파워가 약해진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에 의해 미디어 주체가 인터넷을 이용하는(사실상 모든 사람사람 모두가 될 가능성이 있고많은 사람이 그렇게 주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미디어의 특성과 경험에 있어서 기존의 전통 미디어와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의 전문성과 신뢰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가새롭게 등장한 비전문적 미디어인 트위터가 가장 먼저 전달했던 아이티 지진은 저널리즘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인가개인 블로그에 방문했던 식당의 청결성의 문제를 올린 것전문성이라고 전혀 없는 한 초등학생이 핸드폰으로 찍어서 올린 과도한 체벌 영상은 저널리즘인가 아닌가어떤 기존 미디어도 포착하지 못했던자동차의 결함을 UCC로 제작해 올려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낸 것은 어떠한가이에 대해 저널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과연 저널리즘의 의미는 새롭게 바뀌는 것인가.

 필자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위에서 스스로 정리했던 저널리즘에 대한 정의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은 주체가 진실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 이 정의에 따르면 트위터의 메시지도블로그의 글도초등학생의 영상도자동차UCC도 모두 저널리즘의 결과이다이 모두가 저널리즘인 것이다.

 그렇지만 선뜻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기 멈칫하는 것은이러한 비전문적이고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는 메시지 중에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이다블로그나 UCC, 트위터를 모두 저널리즘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사실 이러한 새로운 저널리즘에 대해 UCC 저널리즘이나 트위터 저널리즘으로 일반화해 부르기가 어렵다하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저널리즘을 부정할 수는 없다다만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러한 뉴 미디어 속에서 저널리즘이 더욱 잘 발현되고 유지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요약하면우리는 지금까지 저널리즘을 행사하던 주체를 신문사나 방송사 등 특정 미디어로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에 속한 개인들 역시 저널리즘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다하지만 이제 이 저널리즘의 주체가 어떤 종류의 미디어에 속해있는 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이제는 역할이 저널리즘을 판단하게 된 것이다다만이것이 기존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다면 그것은 저널리즘으로 돈을 받는 사람들만 존재하던 것이돈을 받지도 않고도 더욱 강력한 저널리즘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전통적 의미의 저널리즘 주체들은 돈 값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UCC나 블로그에서 나타나는 저널리즘을 비전문적이라고 부정 한다고 해서 전통 저널리즘 주체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엄연한 새로운 저널리즘의 주체가 탄생한 것은 막을 수 없다결국저널리즘의 전문가로서 인정받거나 신뢰를 원한다면 돈을 받지 않는 비전문적 저널리즘 주체들이 해내는 만큼 그 이상을 해내는 수밖에 없다그러기 위해서는 비전문적 저널리즘이 발생하는 이유또는 저널리즘 그 존재의 이유독립적인 진실에의 탐구에 더욱 전문적으로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김병철. (2005). 온라인 저널리즘의 이해. 서울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이종욱 역. (2008). 저널리즘의 기본요소서울한국 언론재단
우병동정일형김용성. (2007). 뉴미디어 저널리즘. 부산세종출판사
이민웅. (2003). 저널리즘위기변화지속. 서울: ()나남출판
최민재. (2007). 동영상 UCC와 저널리즘서울한국언론재단.
필림 마이어성동규김광협 역. (2008).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 구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Posted by 허호필
http://hhp8621.tistory.com/entry/What-is-the-Journalism-%EC%A0%80%EB%84%90%EB%A6%AC%EC%A6%98%EC%9D%B4%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for-PR%EA%B8%B0%ED%9A%8D%EC%8B%A4%EC%8A%B5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포털 뉴스 논쟁: 저널리즘 시장질서 재편

포털 뉴스 논쟁: 저널리즘 시장질서 재편

아래 글은 슬로우뉴스에 3회에 걸쳐 게재한 글-1회2회3회-을 하나로 편집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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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은 뉴스 중개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른바 ‘포털 뉴스’다. 이 포털 뉴스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다시 심화하고 있다. 핵심 질문은 이렇다. 포털은 저널리즘의 주체인가?

상황과 함의

상황 1: 조중동 vs. 연합뉴스 + 네이버·다음

지난 2013년 7월 10일 조선일보는 “언론사, 연합뉴스와 계약 중단 확산“이라는 기사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이어 동아일보가 연합뉴스와의 전재 계약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포털사이트 문제”가 언급되면서, “신문사에 연간 3억~7억 원씩 받고 제공하던 통신 기사를 네이버·다음 등 포털에 공짜로 노출”한 연합뉴스의 행태가 갈등의 씨앗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 2013년 3월호에는 “조선과 중앙, 연합과 작별인사 온라인 뉴스 유통 개혁의 신호탄?, ‘연합뉴스 사태’의 원인과 전개 양상“이라는 글이 실렸다. 해당 글에는 “포털에 대한 종속”과 “온라인 뉴스 시장의 왜곡”을 연합뉴스 사태의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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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
조중동 입장은, ‘네이버·다음은 뉴스 서비스하지 마시라’, ‘ 네이버·다음이 계속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면 조중동은  네이버·다음에 뉴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계속 네이버·다음에 뉴스를 공급하면, 조중동의 뉴스 공급 중단의 효과가 미미할 수 있으니 연합뉴스도 뉴스 공급 중단 대열에 동참하라’ 등으로 ‘추론’할 수 있다. 나아가 과연 온라인 뉴스 시장이 ‘왜곡’되었는지, 아닌지는 세밀하게 따져볼 일이다.

상황 2: 네이버 뉴스캐스트 vs. 네이버 뉴스스탠드

한국언론정보학회가 2013년 7월 2일 개최한 “온라인 뉴스 유통 서비스의 현황과 쟁점 세미나’는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또한, 세미나를 통해 다수 언론사들이 감추어 온 ‘뉴스캐스트로의 회귀 열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집단적 열망에 짐짓 놀란 듯 네이버 유봉석 NHN 미디어서비스실 실장은 “공유지의 비극”을 반복할 수 없다며 (선정적) 제목 낚시가 판을 쳤던 네이버 뉴스캐스트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강한 어조로 못 박았다.
함의:
대형 언론사를 제외한 중소 언론사들은, 트래픽 급감으로 결과한 뉴스스탠드 서비스를 개혁하기를 원하고 있다. 가장 좋은 방안은 트래픽 폭탄을 선사했던 과거의 뉴스캐스트로 돌아가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뉴스스탠드의 52개 기본형 언론사 대열에도 포함되지 못한 곳은 뉴스스탠드에 자사 뉴스를 공급할 기회를 갈망할 것이다. 나아가 네이버 검색에도 제외된 언론사는 검색 결과에 자사 뉴스가 포함될 수 있기를 열망할 것이다.

상황 3: 포털 뉴스편집의 공정성 논쟁, 이른바 ‘볼드체 시비’

네이버 뉴스캐스트 및 뉴스스탠드를 매개로 한 개별 언론사의 ‘뉴스 선정성 논란’과는 별도로 네이버·다음 뉴스 서비스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존재한다. 특히 다음의 뉴스서비스에서 사용된 ‘볼드체(굵은 글씨)’가 공정성 논란의 주인공이다.
2012년 10월, 새누리당이 다수당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네이버 대표와 다음 대표를 국정감사장으로 불러냈다. “여당 악재는 볼드체로 표시하고 야당 후보는 긍정적인 이미지의 사진이나 글을 배치”한다는 비판과 함께 볼드체를 통해 특정 기사가 강조되고 이를 통해 정치적 편향성이 조장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나아가 문화일보 2013년 7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여의도연구소는 포털에 의한 유통시장 장악과 여론 왜곡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대형 포털을 언론의 범주에 넣어 뉴스 편집권에 대한 법적 제한을 받게 하거나, 편집권을 뉴스를 제공하는 해당 언론사에 전적으로 맡기는 방안을 법안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참조:포털 뉴스 담당자에게 듣는다 1: 포털 뉴스 볼드체 논란)
함의:
포털 뉴스서비스에 대한 공정성 시비의 배경에는 포털 뉴스는 편집권을 행사할 수 없거나 ‘법 제약’ 아래 제한적으로 포털 뉴스에 편집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똬리를 틀고 있다.

상황 4: 네이버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다

이른바 ‘공룡 포털’ 네이버에 대한 정치권의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매일경제는 지난 2013년 7월 9일 ““네이버가 중소업체 다 잡아먹는다” 與野 규제법 착수” 등의 기획을 통해 이른바 ‘약탈자 네이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일보는 ‘온라인 문어발 재벌 NAVER‘를 연속 기획물로 쏟아내고 있으며, 한국경제는 ‘공룡 네이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시리즈를 발행하는 등 주요 언론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네이버 분쇄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나아가 여야, 미래창조과학부 그리고 청와대까지 네이버에 대한 “일정한 규제와 공정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폭넓은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네이버와 다음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되었다.
함의:
네이버를 소비자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검색시장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할 수 있는 경제학적 근거의 존재 여부와는 별개로, 네이버 및 다음의 불공정 거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고발에 기초하여 진행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네이버 및 다음에 대한 조사는 합법적 행위다.
문제는 네이버 규제에 찬성하는 진영이 이른바 ‘네이버 법’으로 포털을 규제할 수 있는 핵심근거로서 ‘시장 왜곡’ 또는 ‘시장 실패’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이다. 현행법 위반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위한 새로운 법 제정은 질적으로 완벽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저널리즘과 디지털 시장

네이버·다음으로 대변되는 포털의 뉴스서비스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포털에 대한 규제가 타당하고 적절한지를 따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들이 있다.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 및 다음은 언론사(업자)인가? 종이신문에 기초한 언론의 공정성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가? 뉴스생산 사업자와 뉴스중개 사업자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네이버·다음 등 뉴스중개자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 또는 저널리즘 규범은 무엇인가? 검색시장의 네이버를 이동통신시장의 SKT, 전기시장의 한수원 및 한전처럼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할 수 있는 경제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절대 간단치 않은 답변을 찾기 위해 몇 가지 새로운 개념을 아래에 소개한다.

분석 1: 대중매체와 공정성의 탄생, 기술과 저널리즘

대중 또는 대중 사회(mass society) 그리고 저널리즘에서 독자와 시청자를 표현하는 개념인 공중(the public)은,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비로소 탄생한 기술과 연결된 개념들이다. 198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가 ‘군중과 권력(Masse und Macht/Crowds and Power, 1960)‘에서 멋지게 분석하였듯이, 19세기 (종이)신문은 길거리 또는 토론장 등 특정 지리적 공간과 매우 제한된 인원을 넘어 대중 또는 공중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렇다고 종이신문이 개별 국민국가에서 처음부터 이른바 ‘전국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종이신문이 19세기 이후 매체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증기동력 윤전기’와 ‘신문 배달 전용기차’라는 두 가지 기술발전이 놓여 있었다.
이중 실린더 윤전기 (1812년)
1814년 11월 29일 영국 런던 지역신문 타임즈(The Times)는 역사상 처음으로 ‘증기 이중 실린더 윤전기(The Double Cylinder Machine)‘를 도입한다. 증기동력에 의해 작동되었던 이 윤전기는 시간당 1,000부를 찍어낼 수 있는 당시로써는 상상할 수 없었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타임즈는 이후 발전을 거듭하며 1817년에는 하루 7,000부를 판매하는 언론사로 성장하였고 1855년에는 하루 약 60,000부를 발행하는 언론사로 진화하였다.
윤전기 기술의 발전은 신문의 하루 발행 부수를 빠르게 끌어 올렸고, 해당 신문의 ‘도달거리’를 딱 그만큼 확대했으며, 신문을 통해 연결되는 공중의 규모도 증가시켰다. 1870년 즈음에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는 하루 20만 부 발행 능력을 자랑하며 당시 세계 최대 언론사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윤전기 기술이 발전하여도 마차와 자전거 중심의 신문 유통시스템은 신문의 성격을 지역신문으로 철저하게 제한하였다. 런던, 맨체스터 등 특정 도시의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을 연결하여 단일 독자층 또는 공중으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기차 및 철도 발전의 몫이었다. 기차에 기반을 둔 신문유통시스템이 19세기 말 영국 저널리즘의 새로운 기회를 마련한다.
그러나 영국 (지역) 언론사들이 철도를 이용한 고비용 신문 유통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말 영국 제국과 남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는 ‘보어전쟁‘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이 일어난다. 당시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의 전신인 ‘맨체스터 가디언’ 등 지역신문 일부는 식민지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전 세계로 식민지를 빠른 속도로 넓혀가고 있었던 영국 제국에 ‘맨체스터 가디언’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1896년, 데일리 메일: 윤전기 + 철도 = 대중매체의 탄생
마침 1896년 하루 최대 40만 부를 발행할 수 있는 윤전기를 도입한 보수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 런던에서 창간되었다. 영국 제국은 보어전쟁에 지지를 보내는 데일리 메일에 맨체스터 지역으로 신문을 배달할 수 있는 전용 기차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이것이 특정 지역을 넘어 전국에 흩어진 독자를 연결하는 대중매체의 탄생 순간이다(참조: Harold Herd, “The March of Journalism. The Story of the British Press From 1622 to the Present Day, London, 1952, p. 130, 153, 166).
데일리 메일 창간호 1면 (1986년 5월 4일 자)  출처: Daily Mail first edition 1896
데일리 메일 창간호 1면 (1986년 5월 4일 자)
출처: Daily Mail first edition 1896
가디언의 역사 (1921년)
‘가디언의 100년 이슈’ (1921년)
출처: [가디언의 역사] 중에서
고속 윤전기와 철도 배달시스템을 갖춘 영국 데일리 메일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기술 발전을 배경으로 저널리즘의 내용과 역할이 변화한 점이다. 당시 런던, 맨체스터 등 (지역) 신문의 독자층의 중심은 상류 시민계급과 지식인이었다. 소수 지역 독자층을 대상으로 타임즈(The Times), 맨체스터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등 당시 영국 지역신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의견 및 견해를 담아내고 있었다.
현재 언론에서 일반화된 특정 사건에 대해 최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사실 중심으로 서술하는 ‘보도(report)’라는 저널리즘 형식은, 약 40만 부의 발행 부수와 런던을 넘어 영국 전국으로 독자층을 처음으로 확대한 데일리 메일(Daily Mail)에 의해 탄생했다. 데일리 메일은 ‘대중 교육을 받은 중하층(lower-middle class market)‘을 위한 신문’을 목표로 하였다. 대중의 눈높이를 맞춘 저널리즘 형식과 내용이 바로 ‘보도’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윤전기와 철도라는 기술발전에 힘입어 저널리즘은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의 사실 전달에 충실한 보도(report)라는 새로운 저널리즘 형식을 만들어 냈고, 보도 형식은 그 이후 유럽과 북미에서 언론의 공정성 개념의 탄생 배경이 된다.

분석 2: 생산 중심 1차 언론과 중개 중심 2차 언론

증기 윤전기와 기차가 신문 생산과 신문 유통의 혁신을 가져왔고 이를 통해 종이신문이 대중매체로 성장해 갔다면, 인터넷은 저널리즘의 또 다른 질적 변화를 가능케 하고 있다. “뉴스의 미래 1: 문제는 공급과잉이다“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온라인 뉴스는 종이신문과는 다른 상품으로 신문시장과는 다른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종이신문이 다양한 기사가 하나로 엮인 묵음상품(bundling)이라면, 온라인 뉴스는 개별 뉴스가 독립된 객체로서 원자화(atomization)되어 월드와이드웹에서 다양한 중개자를 만나 새로운 문맥에서 소비된다.
언론사, 다시 말해 종이신문 생산 주체는 기사 생산부터 윤전기에 의한 신문 생산, 신문 유통, 최종 소비에 이르는 가치 사슬 구조 전체를 장악 또는 관리한다. 반면, 온라인 뉴스 생산 주체는 기사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여전히 가지나 기사 및 뉴스의 유통 및 소비에 대한 독점적 지배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뉴스 플랫폼의 다변화
뉴스 플랫폼의 다변화
위 그림에서 온라인 뉴스 생산자는 ’1차 뉴스 플랫폼’으로 정의된다. 1차 뉴스 플랫폼이 생산하고 편집한 뉴스는 해당 뉴스 사이트를 방문한 이용자에 의해 소비된다. 나아가 생산된 뉴스는 ‘뉴스 판매-콘텐츠 신디케이션’과 검색 크롤러에 의해, 또는 이용자 추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복수의 뉴스 중개자(이를 ’2차 뉴스 플랫폼’이라 부를 수 있다)에게 모인다.
다양한 뉴스 생산자로부터 수집되거나 구입된 뉴스는 2차 뉴스 플랫폼에서 자동으로 또는 수동으로 편집되어 새로운 맥락에서 이용자를 만난다. 한편, 개별 이용자는 스스로 1차 뉴스 플랫폼에서 소비한 뉴스를 추천 등의 형식을 통해 중개 및 확산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2차 뉴스 플랫폼의 네 가지 유형
2차 뉴스 플랫폼은 내부 가치 창출 구조 또는 편집 방식 및 편집 주체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유형에서는 구매된 개별 기사/뉴스가 구매자의 편집의도 및 편집기획에 따라 ‘주제별 뉴스’, ‘오늘의 이슈’, ‘이 시각 주요뉴스’, ‘댓글 많은 뉴스’ 등 새로운 맥락에서 제공된다. 다음 뉴스 및 네이버 뉴스가 이 유형에 속한다.
두 번째 유형은 (반)자동으로 수집된 뉴스가 순위 알고리즘 등 다양한 편집 원리에 따라 이용자에게 제공되고, 이용자는 해당 뉴스를 소비하기 위해 생산자인 1차 뉴스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되는 뉴스 중개서비스다. 특정 뉴스 소재 및 뉴스 이슈에 대해 어떤 언론사의 해당 뉴스가 어떤 순서에 따라 노출되는지는 기계 알고리즘에 따라 또는 자체 편집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중개 뉴스서비스는 ‘구글 뉴스‘, 구글 검색, 네이버 (뉴스) 검색 및 다음 (뉴스) 검색 등이다.
세 번째 유형은 네이버 뉴스캐스트 및 뉴스스탠드로서 편집 기능이 1차 뉴스플랫폼에 부여되는 경우로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다.
네 번째로 2차 뉴스플랫폼의 마지막 유형은 디그(Digg)뉴스바인(newsvine)뉴스메이트 등처럼 1차 뉴스플랫폼의 이용자 추천이 집단화하는 편집 방식을 통해 다양한 뉴스를 중개하는 뉴스서비스다.
이들 뉴스 중개서비스는 서로 다른 편집 방법론 또는 뉴스 재가공 과정(news-rebundling process)을 가지고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 볼 때, 바로 이 편집 방법론이 뉴스 중개서비스의 주요 가치이며 매력인 것이다. 윤전기 및 기차와 유사하게 월드와이드웹은 이렇게 저널리즘에 대한 정의 및 편집 개념에 새로운 지평선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뉴스 중개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와 다음을 저널리즘의 주요 주체로서 인식해야 한다. 네이버와 다음의 편집권을 존중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네이버와 다음이 어떻게 저널리즘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지를 보다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저널리즘 몰락의 시작 
스타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교수로 활동 중인 제네바 오버홀저(Geneva Overholser 2005)는 “우리가 알고 있던 저널리즘은 끝났다”는 표현으로 저널리즘의 위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뉴욕타임즈를 중심으로 미디어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카(David Carr 2007)는 “역사가는 미국 역사에서 아마도 지금을 저널리즘이 사라지는 시기로 기록할 수 있을지를 검토할 것이다”며 쇠퇴의 길로 접어든 저널리즘에 대한 진혼곡을 애처롭게 부르고 있다.
제네바 오버홀저(2012), 데이비드 카(2013)
출처: UCR위키커먼스
이들이 말하는 ‘저널리즘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윤율이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 언론사의 수익성 악화를 말하는 것일까? 한국일보 사태와 같이 사주가 편집권을 당당하게 그리고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경우를 위기라 불러야 할까? 이집트, 이란, 베트남, 러시아 등에서 기자 또는 블로거가 정부 비판 목소리만으로 어두운 감옥으로 끌려가는 억압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저널리즘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며 그리고 공정한 보도를 추구하는 이른바 ‘독립 언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부패지수‘에서 언론은 최근 가장 큰 신뢰도 하락 폭을 기록하고 있다. 독립 언론이 빛바랜 슬로건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은 교육계보다 언론계가 더 부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39쪽).
이런 사실들에서 저널리즘의 위기를 추론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독한 열병처럼 전 세계 언론에 빠르게 번지고 있는 저널리즘 위기는 비민주적 정치 및 사회 구조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출구를 찾기 어려운 경제 위기에도 살아남는 기업이 있다지만, 언론 산업에 들이닥친 한파는 ‘종이신문’을 버릴 때에만 물러나는 도도하고 오만스러운 선전포고와 같다.

저널리즘 1차 위기: 디지털 전환 실패

여전히 종이신문의 전통 아래 놓여 있는 저널리즘은 세 가지 영역에서 압력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압력은 젊은 독자 대다수가 인터넷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신문 읽기를 권장하려는 절망에 가까운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인터넷으로 떠난 독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종이신문의 매력은 교과서에서나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 성장하고 있다.
두 번째 압력은 독자와 함께 광고주도 종이신문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잠시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어떤 근거에 기초해서 언론사 경영진은 ‘인터넷 신문(internet newspaper)’이라는 유별난 공간에 값비싼 종이 위에 인쇄된 기사를 처음부터 무료로 공급했을까?
기사의 무료 공급은 경제적 합리성을 쉽게 찾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이라는 신기루 현상에 취해 헛된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언론사 경영진은 무료 기사를 미끼로 더 많은 독자들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독자가 있는 곳에 광고주도 함께한다. 독자 수 또는 클릭 수로 협소하게 이해된 방문자 수는 언론사가 광고주에게 과시할 수 있는 매체 영향력으로 동시에 광고 효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사 경영진은 여기서 결정적인 판단 착오를 한 것이다. 인터넷은 종이신문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경쟁 공간’이다. 전 세계 언론(1차 뉴스 플랫폼)이 몇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도착할 수 있는 땅이다. 뉴스 선별 및 중개를 담당하는 다양한 유형의 2차 뉴스플랫폼이 만들어졌고, 인기를 얻었으며 이용자에게 버림을 받았고, 그리고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언론사가 종이신문을 통해 고이 품어 왔던 광고주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만난 물고기가 되어 다른 경쟁자의 품으로 달아나고 있다. 그 품이 네이버이며 다음이다. 더욱 큰 대자연의 품이 구글이고 페이스북이다. 광고주에게 이러한 경쟁 강화는 너무나 멋진 세상이다. 헨리 포드는 종이신문과 잡지의 광고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광고에 쓰는 예산의 절반은 (효과를 측정할 수 없기에) 낭비에 불과하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낭비에 해당하는 예산 절반이) 어느 쪽 절반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종이매체와는 달리 인터넷 기반 광고기술의 진화는 광고주에게 광고 효율성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 때문에 언론사는 참담한 패배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품을 떠난 자식들을 바라볼 뿐이다. 최근 뉴욕타임즈, 가디언 등이 광고주를 설득하기 위해 광고기술 개발에 막대한 재정투자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언론사와 달리 영미 및 유럽 언론사의 경우 광고매출 하락은 더욱 심각하다. 이른바 구인, 부고, 중고차, 부동산, 데이팅 등 안내광고(Classified advertising)시장의 변화가 영미 및 유럽 언론사를 처참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미국 종이신문의 안내광고 총매출은 약 2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런데 200억 달러의 종이신문 안내광고 시장은 2012년 약 45억 달러로 크게 축소되었다(Newspaper Association of America 2012, 2013). 여기서 2000년 당시 안내광고 시장 매출이 미국 종이신문 전체 매출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개닛(Gannett)과 뉴육타임즈의 현재 주식 가치가 당시와 비교하면 1/10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안내 광고  Khantipol (CC BY)
안내 광고
Khantipol (CC BY)
저널리즘이 받고 있는 세 번째 압력은 2차 뉴스플랫폼의 활성화에 따른 개별 언론사의 의제 설정 능력의 급격한 상실에 기인한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뉴스 서비스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꺼질 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한 뉴스 중개 경향도 조금씩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강화되고 있다.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 2차 뉴스플랫폼은 결코 기형아가 아니다. 기사의 원자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이며 중개의 무한한 가능성은 월드와이드웹의 구조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나아가 인터넷에서 발생하고 있는 뉴스 유통 및 뉴스 소비 과정의 변화는 인터넷에서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과 전달되는 과정이 변한 것과 관련 있다. 백과사전 편집자가 지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구글 등 검색서비스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거대한 목록(index)에 담아내고 있다. 검색서비스에 의한 지식의 목록화는 지식 구성에 있어 결정적 변화를 함께 가져온다.
근대화 및 산업화 시기에 정보와 사실은 전문가로 구성된 기관(institution)에 의해 검증되는 과정을 거쳐 옳고 그름이 가려졌다. 정보 및 사실이 가지는 의미가 탐구된다. 그리고 그 의미가 지식, 진실, 규범, 원칙, 공리 등으로 인정받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카논(canon)‘이라고 불린다. 종이신문을 생산하는 언론사는 기자와 편집인으로 구성된 하나의 ‘기관’이며, 정기적으로 생산되는 종이신문 그 자체는 하나의 ‘카논’이라 칭할 수 있다.
사실과 정보가 전문가에 의해 정제되고 선별되는 과정이 ‘카논’을 의미한다면, 이와 반대로 검색서비스는 사실과 정보가 엄청나게 큰 목록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목소리의 합창’과 같다. 검색 알고리즘은 특정 질문에 대해 하나의 의무적인 답변이나 웹사이트를 제시하지 않는다. 특정 질문에 서로 경쟁하는 복수의 결과 값이 제시되고, 이용자 개인은 결과 값 중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함께 결정한다.
인터넷에서 하나의 사실이 진실성을 얻게 되는 과정은, 외부 기관이 아닌 복수의 동료 전문가에게 평가받는 방식인 동료평가(Peer Review)의 확장된 형태다. 동료평가처럼 여전히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인터넷에서 하나의 진술, 정보 및 뉴스는 서로 다른 판단력에 근거한 다양한 평가를 거쳐 사실과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무한에 가까운 복수의 행위에 기초한 지식 형성과정은, 일찍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이야기한 것처럼,  “다양한 관점을 가진 복수의 사람들에 의해 조명 받는 과정에서 그 자체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 때문에 검색서비스와 2차 뉴스플랫폼은 인터넷 시대에 사실 및 뉴스가 지식 및 진실과 더욱 가까워지도록 돕는 중요한 도구다. 그리고 검색서비스와 2차 뉴스플랫폼이라는 인터넷의 지식 도구는 다양한 비판과 혁신의 영향을 받으며 새롭게 태어나고 진화하고 있다. 개별 목소리(웹 페이지) 및 개별 뉴스의 집합체 및 합창은 인터넷에서 목록(index) 형식으로 제공되며, 이러한 인터넷 지식의 질서는 언제나 임시적인 상태라는 특징을 가진다. 특정 사실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 및 새로운 뉴스가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목록에 등장한다. 이 목록은 특정 질문에 대한 진실을 규정하지 않고 다만 이용자에게 방향성을 제시할 뿐이다.
결국, 무엇이 유효한지를 판단하는 것과 목록의 개별 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이용자 자신의 몫이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의 합창과 다원주의는 지식의 민주화를 일정 수준 가능케 하고 있다. 지식의 민주화만큼 기관, 특히 개별 언론사의 지식 결정력 및 의제 설정 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언론사의 의제 설정 능력 상실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의한 구조적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저널리즘 2차 위기: 기자와 정보원의 공생관계

나쁜 뉴스 (뉴프레스, 2010)
나쁜 뉴스 (뉴프레스, 2010)
경제 및 금융 전문기자 출신인 미국의 안야 쉬프린(Anya Schiffrin)은 2010년  ”나쁜 뉴스: 어떻게 미국 경제지는 세기의 사건 보도를 망쳤는가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라는 책을 대표 집필한다. 여기서 ‘나쁜 뉴스’라 함은 역설적이게도 비판적 시각을 담아내고 있는 뉴스를 말한다. 당돌한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2008년 전후에 일어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저널리즘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쉬프린의 남편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이 책에서 당시 비판적 언론 하나만 있었어도 투기 거품을 일으켰던 집단적 광기를 막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 비판적 언론이 단 하나만이라도 존재했다면, 그 비판적 언론에 의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이뤄졌다면, 현실과 연관성을 상실한 (금융) 시장이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Stiglitz 2011, 24-26).
또한 같은 책에서 딘 스타크맨(Dean Starkman)은 2000년 초반부터 2007년 중순까지 미국의 9개 경제지의 기사내용을 분석했다. 스타크맨에 따르면 9개 언론사의 기사 중 총 730개의 기사가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같은 기간 동안 생산한 기사의 수가 약 220,000개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730개는 턱없이 부족하다. 스타크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홍보(PR)자료에 기초한 기사(“좋은 뉴스 Good News”)의 홍수에 비교한다면 730개의 비판 기사(“나쁜 뉴스 Bad News”)의 양은 …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에 흐르는 한 개의 코르크 마개와 같다”(Starkman 2011, 43).
그 때문에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담당할 비판언론의 존재는 스티클리츠에게는 단지 희망 사항일 수밖에 없다. “기자라고 사회 다른 편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 위기 이전에는 기자들은 스스로 투자 거품 속으로 들어갔고, 거품이 터진 이후에는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었다”(Stiglitz 2011, 24).
여기서 스티글리치는, 기자와 정보원 또는 기자와 홍보(PR)담당의 공생관계를 현대 저널리즘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미국 언론사의 편집국은 이른바 ‘카더라’식 보도(he said, she said reporting)에 빠져있다. 또한, 기자 및 편집국의 분석이 빠진 상태로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는 것을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보도라고 생각하는 것도 ’카더라’식 보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색맹인 기자가 하늘의 색채가 파랗다고 믿는 사람에게 ‘하늘은 오렌지색이야’라고 주장하는 다른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기자 스스로 중립적이고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널리즘 스스로 신뢰도를 붕괴시키는 행위다(Stiglitz 2011, 30).
더구나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저널리즘의 신뢰도를 붕괴시키는 새로운 위험요소가 등장했다. 비판 기능과 분석 능력이 축소된 저널리즘의 틈 사이를 돈과 전문능력으로 무장한 홍보 전문가가 비집고 들어서고 있다. 특히 블로그, SNS 등 소셜 미디어 홍보 및 마케팅이 확산하면서 정부, 기업, 그리고 시민단체 등은 온라인 홍보에 적지 않은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 왔다. 정부 및 기업의 목소리가 언론의 기고문 형식으로 공중에게 전달되면서 언론사에는 작은 규모지만 새로운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기고문은 저널리즘의 신뢰도 하락에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클릭 몇 번만으로 보도자료가 저널리즘으로 둔갑하는 일들이 일상화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정부, 기업 및 시민단체는 온라인을 통해 공중과 만나는 기회가 확대하고 있어 높은 비용이 드는 광고, 기고문, 보도자료보다는 공중과 직접적인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은 언론사 사이의 경쟁을 확대해 ‘뉴스의 공급과잉’을 낳았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언론사의 중재를 반드시 필요로 했던 정부, 기업, 시민단체가 홍보 콘텐츠의 대량 생산을 통해 언론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경쟁 과잉으로 인한 언론사의 수익성 악화는 저널리즘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언론사의 비용 절감은 사전조사 생략, 하루 기사 생산량 증가 압력 등 저널리즘을 악화시킨다. 질적 저하를 겪고 있는 저널리즘은 높은 투자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홍보전문가와 경쟁하는 상황에 부닥치고 있다. 저널리즘 몰락의 소용돌이가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카더라’식 보도가 장마철 한강물처럼 넘쳐나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하며 때론 마음을 일으켜 세워 몸을 광장으로 이끄는 언론 보도가 존재한다. 이러한 값진 보도와 기사가 점차 열악해지는 경제 환경 및 편집국 환경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저널리즘이 처한 이러한 역설은 연구자들이 간간이 제기해온 언론 신뢰도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사회적 반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Franklin 2008,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저널리즘의 위기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매력적인 문장이 기사에서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가혹한 해고 또는 편집국 폐쇄에도 흔들리지 않는 멋진 기자들이 우리 곁에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정치적 경향을 떠나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기획기사로 둔갑한 홍보 기사가 넘쳐날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홍보처의 보도자료를 받아 적는 기자가 한두 명씩 늘어날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기자 한 명이 하루에 3개 많게는 4개의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노동 강도를 피할 수 없을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연예인 사진 한장 한장이 개별 기사가 되어 네이버 및 다음에 노출될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포털의 인기 검색어를 따라잡기 위해 기자의 노동현장이 이른바 ‘우라까이’(기사 베끼기)지옥으로 전락한 때다.
전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사회에서 저널리즘은 멸종 위기 종이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저널리즘을 가리키며 ‘저널리즘의 아름다운 복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음하며 절망하며 눈물을 삼키며 하루하루 거친 노동을 견디고 있는 절대다수의 기자를 보지 못하는 행복한 낭만일 수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이야기하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저널리즘은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석 3: 언론 공정성의 과잉

‘포털 뉴스 논쟁 1: 포털은 저널리즘의 주체인가’에서 살펴본 것처럼, 언론의 공정성 개념은 기술의 발전 그리고 정치 및 경제 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신문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생산기술 및 유통기술의 진화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대중신문’과 ‘보도’라는 새로운 뉴스양식의 출현이 가능해 졌다. 같은 배경에서 언론의 객관성 및 공정성 규범이 생겨났다. 데이비드 카(David Carr 2013)가 훌륭하게 정리하고 있듯이 저널리즘에서 “정치적 의도없는 정보(Information absent a political agenda)” 또는 독립 언론(independent press)에 대한 추구는 언론의 기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한편 20세기 북미 및 유럽에서 형성된 일련의 저널리즘 규범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이론은 막스 베버의 가치중립(Wertfreiheit, value-freedom) 및 객관성 요구다. 가치중립이라는 표현은, 막스 베버가 1904년 발표한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의 객관성(‘Objectivity’ in Social Science and Social Policy)’이라는 논문에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베버의 가치중립 요구는 언론의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 불편부당성 등 다양한 저널리즘 규범으로 이어졌다.
베버(1864~1920) vs. 아도르노(1903~1969)
그러나 베버의 이론은 아도르노를 통해 거센 비판은 만나게 된다. 지난 1961년부터 1969년까지 지속한 실증주의 논쟁에서 아도르노는, 비정치적인 자세는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가치중립은 지배적인 가치체계에 복종하는 행위이며 비판의 중단을 의미한다(Adorno et al. 1969, 71-75). 한편 아도르노에게 있어 특정 가치를 강조하는 가치지향(value-orientation)과 가치중립은 동전의 양면이다. 왜냐하면, 가치중립 또한 특정 가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value)라는 단어는 두 개의 구별되는 뜻이 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재화에 대한 교환척도 및 비교척도로서 가치①[1]다. 여기서 재화의 가치①는 생산비용 또는 기대효용을 통해서 결정되며 가격을 통해 표현된다. 두 번째 가치②는 이상(ideal)의 다른 표현이다. 가치②는 개인, 문화 또는 사회와 관련된 특별한 의미 또는 규범과 관련된 의미를 통해 만들어진다. 첫 번째 가치①가 경제 가치① 또는 교환 가치① 등에 사용된다면, 두 번째 가치② 개념은 가치 판단(value judgement), 정서적 가치(sentimental value) 등으로 쓰인다.
아도르노로 잠시 돌아가 보자. 아도르노에 따르면 베버의 가치②중립 개념은 1900년도를 전후하여 맑스의 가치 이론에 대항하는 반론으로 탄생했다. 베버의 가치② 개념은 재화의 생산과 관련된 사회적 관계와 거리는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에게 있어 가치②는 사회적인 비교 척도이며 교환 척도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및 정치적) 입장, 행동, 행위자 등에 대한 가치② 평가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② 평가에는 다양한 가치①②의 사회적 생산 및 배분에 있어 어떠한 가치② 척도를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있다.
또한 19세기를 경과하면서 경제학에서 교환 가능한 재화의 비교 수단으로서 가치①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면, 동시에 가치②철학(axiologyvalue theory)이 발전하였다. 가치②철학은, 영원한 가치②를 추구하며 그 판단의 척도를 순수한 감정으로 부터 창조하려고 시도한다. 한편 가치②철학의 발전은 가치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와 유사한 흐름을 저널리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프리즘(PRISM)을 폭로하는 과정을 함께한 영국 가디언 블로거 글렌 그린왈드(Gleen Greenwald)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에서 주류언론은 기자가 가져야할 가치②판단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jeffschuler, "uncle sam wants your privacy" (CC BY)
jeffschuler, “uncle sam wants your privacy” (CC BY)
스노든의 행위는 국가기밀을 폭로하는 불법행위이며, 그린왈드는 보도 과정에서 스노든을 (개인적으로) 돕는 정치행위를 통해 기자의 규범 또는 저널리즘의 규범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 주류언론의 비판이다. 또한 그린왈드와 관련된 저널리즘 정체성 논쟁에서 미국 주류언론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독립 언론’의 가치②가 중요하며 때문에 언론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절실함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저널리즘 위기와 관련된 저널리즘의 가치①에 대한 사회적 관심, 다시 말해 저널리즘의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생산과 배분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저널리즘의 가치②논쟁으로 둔갑한다.
현재 네이버 및 포털의 뉴스서비스의 가치①논쟁 또한 위의 흐름들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개별 언론사가 온라인에서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 등 저널리즘 가치①의 문제가 포털 뉴스서비스에 의한 공정성 훼손 주장, 공정한 여론 형성을 위한 포털 뉴스서비스 중단 요구 등 저널리즘의 가치②의 문제로 둔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치②는 언제나 가치①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여론이 활력있게 생겨나고 흐르는 민주주의, 언론의 공정성 등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가치②는 경제적 교환관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한편으론 저널리즘의 가치②를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조금 등 국가(=국민)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거나 네이버에게 과거 뉴스캐스트가 선사했던 트래픽 축복을 요청하고 있다면, 저널리즘을 재화로 인식하고 저널리즘의 생산과 연관된 가치①를 솔직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넘어 몰락으로 이이지고 있는 이 때, 저널리즘의 가치①를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 절실하다. 인터넷 뉴스시장에서는 저널리즘의 생산비용-공급-과 기대효용-소비- 사이에 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저널리즘이 재화로서 기능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격형성 방안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저널리즘의 시장 가치①를 회복시키는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저널리즘의 가치② 주장은 더욱 더 현실성을 상실하며 정치적 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현재 겪고 있는 암울한 질곡은 가치②에 관한 사회적 합의 및 학술적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에게 시급한 것은 재화로서의 가치①를 시장논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시급하게 회복하는 것이다.
네이버 및 다음의 뉴스서비스가 사라진다면 한국 저널리즘이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언론사 경영진, 관료, 정치인이 존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점에 멋진 말과 빠른 말로 마차가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동차를 이길 수 있다는 마음과 같다.
“뉴스는 와인처럼 숙성시켜야 가치가 증가한다.” (모벌리 벨) 
1785년 창간한 영국 일간지 ‘더 타임즈(The Times)’는 그동안 소유주가 여러 차례 바뀔 만큼 경제적으로도 거친 굴곡의 역사를 겪어왔다. 현재는 루퍼트 머독이 지배하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이 ‘더 타임즈’의 세 번째 소유주다. ‘더 타임즈’가 겪은 첫 번째 (경제적) 위기는 1890년대다. 저가 신문 출현 등으로 신문시장 경쟁 압력이 높아지면서 신문 판매 가격이 하락했다. 한편 최초로 해외에 특파원까지 파견했던 ‘더 타임즈’는 높은 원고료, 윤전기 고도화 및 생산설비 투자 등 고비용 구조로 경영난을 겪게 된다.
Charles Frederic Moberly Bell
모벌리 벨
(1847~1911)
이 때 ‘더 타임즈’ 창업가문이자 첫 번째 소유주 가문인 ‘월터 가문’은 경영 능력이 탁월한 모벌리 벨(Moberly Bell)을 편집장으로 임명한다. 그는 신문사 최초로 이른바 ‘끼어팔기’ 마케팅을 도입한 인물이다. 모벌리 벨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더 타임즈’를 묶음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이를 시작으로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더 타임즈’는 자사 브랜드를 타상품에 빌려주고, 이를 신문을 통해 광고하며, 상품판매까지 진행한다.
이렇게 ‘직접 마케팅(direct marketing)’이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벌리 벨의 경영수완을 통해 수익률을 높인 ‘더 타임즈’는 19세기 후반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1966년 ‘톰슨 미디어‘에 매각될 때까지 ‘고급 저널리즘’의 아이콘으로 성장해갔다.
1890년부터 1911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더 타임즈’의 편집장을 역임했던 모벌리 벨은 경영 능력만 출중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뉴스는 와인처럼 숙성시켜야 가치가 증가한다 (News, like wine, improves by keeping)”라는 표현을 통해 속보보다 정밀한 사실확인에 기초한 정확한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Hansen 2012). 그는 저널리즘의 브랜드 가치가 지켜져야 이에 기초한 부가 비즈니스도 가능하다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이 때문에 모벌리 벨은 뛰어난 경영능력 못지않게 동시에 ‘보도의 정확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풍부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디지털 시대, 늘어난 뉴스의 유통기한

네이버 및 다음에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또는 ‘실시간 이슈’를 불나방처럼 따르는 뉴스가 넘쳐난다. 심지어 제목만 있는 속보 뉴스가 등장한 지 오래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디지털 뉴스의 속도 경쟁에서 ‘클릭 수’로 표현되는 뉴스 방문자를 높이려는 언론사의 열망 때문이다. 그렇다면 뉴스경쟁 강화와 24시간 뉴스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 던져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뉴스 유통기간은 짧아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대답을 개별 뉴스에서 찾지 않고 전체 디지털 뉴스시장의 특징에서 찾는다면, 뉴스 유통기간은 오히려 더욱 길어졌다.
첫 번째 부정의 실마리는 크리스 앤더슨을 통해 유명해진 롱테일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롱테일 이론은, 80:20의 분포에서 소수에 의해 분할되는 80이라는 쏠림현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작은 빈도수의 길고 긴 결합인 20이 디지털 시대에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객체에 URL, IP주소 등 주소값을 부여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월드와이드웹은, 앞에서 언급한 20에 해당하는 긴 꼬리에 분포된 책, 음악, 뉴스, 블로그 등에 다양한 발견의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국 등반가 조 심슨(Joe Simpson)은 1988년 자신의 체험담에 기초한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Touching the Void)”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이 글은 심슨과 그의 친구 예이츠(Yates)가 남미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시울라 그란데(Siula Grande) 서벽(6,400 m)을 오른 이후 하산 길에서 겪은 조난사고를 다루고 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출반 이후 큰 조명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1997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는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Touching the Void)’를 세상의 빛으로 다시 끌어냈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조난사고를 다룬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인기를 얻자,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는 아마존(amazon) 등 온라인 서점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이용자의 관심영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좌)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우)
‘희박한 공기 속으로’(좌)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우)
각각 영화로 제작될 만큼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가 됐다
두 번째 실마리는 1995년부터 영국 ‘가디언’의 편집장으로서 저널리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앨런 러스브러저(Alan Rusbridger)의 뉴스에 대한 ‘관심 지속 시간(attention span)’에 대한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트위터를 넘어 월드와이드웹 이용자의 관심과 이해가 과거의 뉴스를 새롭게 발굴하고 현재의 문맥으로 끌고 나오는 매개체가 됨을 강조한다.
“트위터 이용자는 전문기자들의 열차가 떠난 한참 후에도 특정 이슈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수집한다.(They(Twitter users) will be ferreting out and aggregating information on the issues that concern them long after the caravan of professional journalists has moved on.)” (Rusbridger 2010)
이용자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관계망에 전파시킴을 통해 현재를 기록하는 주체 중 하나로 기능할 뿐 아니라, 이용자는 수북이 쌓여 있는 과거의 뉴스 및 정보를 현재화한다.
뉴스의 유통기한이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실마리는 “뉴스가 중요하다면, 나를 찾아올 것이다(If the news is important, it will find me)”라는 표현에 담겨있다(Stelter 2008). 뉴욕타임즈 기자 쉬텔터는 지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즈음하여 당시 젊은 층의 뉴스 소비 방식을 취재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각자에게 관심 있는 특정 뉴스를 친구에게 이메일, SNS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천하고 있음을 관찰했고, 친구 관계망에 기초한 뉴스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종이신문, 방송 뉴스 등 전통적인 뉴스 소비 방식은, 뉴스 생산자가 제공하는 뉴스를 뉴스 생산자가 결정한 특정 시간에 소비자가 소비하는 형식이다. 도서관 등 과거 문헌을 보관하는 특수 저장시스템을 제외한다면 과거 뉴스는 다시 소비되지 않는다. 그러나 디지털 뉴스에서는 아날로그 뉴스와 달리 뉴스 소비 선택권이 이용자에게 넘겨졌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현재 및 과거의 뉴스가 흘러다니고, 반복적으로 추천되는 뉴스는 개별 이용자의 관심을 끈다. 특정 주제 및 소재와 관련된 개별 뉴스 모두가 고유주소(URL)를 가지며 관계망에 연결된 무수한 이용자에 의해 계속해서 추천되고 새롭게 가공되고 새롭게 해석된다.
그러나 이렇게 뉴스의 유통기한이 늘어나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뉴스 소비 방식의 변화와 편향성

파하드 만주  (1978~현재)
파하드 만주
(1978~현재)
파하드 만주(Farhad Manjoo)는 ‘이기적 진실(원제: True Enough, Learning to Live in a Post-Fact Society)’에서 정보 및 뉴스의 폭발적 증가와 수많은 이용자에 의한 정보의 (재)해석 가능성은 이른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 또는 선택적 인지(selective perception)에 의한 편향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월드와이드웹은 개별 이용자로 하여금 믿고 싶은 것에 어긋나는 정보는 무시하고, 믿고 싶은 것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소비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2].
만주는 이렇게 지적한다.
“역설적이게도 새 기술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연결해주는 동시에 세상에 대한 시야를 좁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만이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또한,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형성되고, 집단 구성원은 서로의 믿음을 진실이라고 강조하며, 타 집단의 믿음을 거짓이라 주장하는 등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만주는 위키피디아, 기트허브(GitHub) 등 인터넷 집단지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더욱이 월드와이드웹에 연결된 이용자 집단은 선택적 지각에 따라 자기반성 능력이 제한된 상태다. 그에게 비친 디지털 시대는 객관성과 진실이 무너지고, 특정 믿음에 기초한 선택과 그에 따른 갈등만이 남아있는 피폐한 사회다. 따라서 만주에게 남은 것은 ‘현명하게 선택하자’는 막연하고 공허한 충고뿐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대중(mass, crowd) 및 공론장[3]에 대한 만주의 비판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중의 비합리성, 조작 가능성, 편협성, 쏠림 등에 대한 비판은 19세기 이후 적지 않은 기자와 학자에 의해 꾸준히 주장된 내용이다. 1841년 찰스 매카이(Charles Mackay)에 의해 쓰인 ‘군중의 망상과 광기(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는 17세기 네델란드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었던 ‘튤립 파동(tulip mania)’에서 나타난 당시 귀족과 상인의 잘못된 ‘믿음의 확산’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2008년 전후로 발생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튤림 파동의 현대적 재현에 다름 아니다.
또한,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1895년 발간된 ‘군중심리(원제: Psychologie des foules)’에서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 개인과 집단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조종자의 암시에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1944년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을 통해 영화, 라디오 등 자본가의 이해를 담은 문화산업은 은유와 암시를 통해 대중을 조작한다고 지적한다. 파하드 만주의 비판 또는 적대적 매체 지각 이론은 대중의 쏠림현상을 해석하는 도구를 제시할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시대에서 정보소비 및 뉴스 소비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으로 말할 수 없다.
문제는 서로 다른 크고 작은 ‘부분’ 공론장이 형성되고 갈등하며 각자의 믿음에 빠지는 결과에만 있지 않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월드와이드웹, 스마트 기기 등 변화된 네트워크 환경에서 정보 및 지식이 형성되고, 확산하고, 재가공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관한 이해이다. 한 사회의 지식 및 여론 형성의 제약을 극복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그다음 수순이기 때문이다.
뉴스 생산자와 뉴스 소비자 사이의 중개가 이뤄지는 2차 뉴스플랫폼에서 동일한 사건을 다루는 복수의 뉴스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용자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감히 현명하고자하는 용기(Sapere Aude)’[4]를 낼 수 있는 디지털 정보 및 디지털 뉴스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뉴스 생산자, 뉴스 중개자, 뉴스 소비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며, 이들 사이에 공정한 시장규칙을 만들어나가는 디지털 뉴스시장에 대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분석 4: 투명성과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

먼저 구별해야 하는 것은 뉴스 생산자인 1차 뉴스 플랫폼의 ‘뉴스 편집원칙’과 뉴스 중개자인 2차 뉴스플랫폼의 ‘뉴스 편집원칙’은 다르다는 점이다. 뉴스 생산자의 뉴스 편집은, 뉴스 가치(news values) 이론 등에서 분석한 것처럼, 영향성, 시의성, 저명성, 근접성, 갈등성 등 사실과 사건을 뉴스화하는 언론사별 기준에 따른다. 디지털 시대에도 영국 가디언의 ‘열린 저널리즘(open journalism)‘, 기자와 독자의 협업에 기초한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crowdsourcing journalism)‘ 등 뉴스를 생산하고 편집하는 방식도 다양한 혁신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뉴스를 중개하는 2차 뉴스플랫폼의 뉴스 편집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단일 사안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단일 사건에 대한 사실의 파편을 서로 다르게 재구성하는 수많은 뉴스가 뉴스 소비자를 찾아 월드와이드웹이라는 단일한 공간에서 경쟁하고 있다. 다양한 언론사 및 블로거가 생산한 뉴스와 뉴스 소비를 중개하는 뉴스시장(news market)인 2차 뉴스플랫폼은 경쟁하는 뉴스를 목록(index) 형식으로 제공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뉴스) 목록(index)의 순서를 누가 어떠한 기준에 기초하여 결정할 것인가이다. 바로 이 ‘뉴스 목록 순서’는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는 매커니즘이며 동시에 2차 뉴스플랫폼의 편집 방식이다. 그리고 앞선 글 ‘포털 뉴스 논쟁 1: 포털은 저널리즘의 주체인가‘에서 살펴본 것처럼, 뉴스목록 순서는 2차 뉴스플랫폼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한국 디지털 뉴스시장의 가장 강력한 중개자인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의 편집장식 또는 시장중개원칙은 무엇일까.
네이버 및 다음 등 포털뉴스에서는 담당 뉴스팀이 직접 또는 (독립된) 외부 전문가 그룹과 협업을 통해 목록의 운영원칙을 결정한다. 네이버는 현재 총 5개의 뉴스편집 원칙을 공개하고 있고, 총선 및 대선 등 선거 직전에 강화된 뉴스 편집 원칙을 ‘공지사항’을 통해 공개해 왔다. 다음은 ‘미디어 다음 공지사항’을 통해 뉴스 서비스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네이버 및 다음이 차지하고 있는 한국 뉴스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개 역할을 고려할 때 이렇게 공개된 편집원칙의 한계는 명확하다.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겠습니다’거나 ‘균형 잡힌 편집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습니다’ 등 뚜렷하지 않고, 막연한 편집원칙만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뉴스 중개시장의 원칙을 가지고서는 어느 뉴스 생산자도 시장의 소비 신호를 효과적으로 수신할 수 없다.
사람의 편집을 타지 않는다고 알려진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와 다음 ‘실시간 이슈’에 넘쳐나는 이른바 ‘우라까이’(기사 베끼기)에 대한 편집원칙은 무엇일까. 특정 소재에 뉴스를 배치하는 것은 뉴스 생산 시간대에 따른 결과일까 아니면 다른 원칙이 있는 것일까.
공급과 소비를 중개하는 시장 신호가 모호할수록, 뉴스 생산자, 뉴스 중개자 그리고 뉴스 소비자가 가진 시장 정보의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 성격이 강할수록 시장은 끊임없이 갈등과 마찰(frictions)을 일으키고, 시장 마찰이 구조화된 불완전 시장(incomplete market)은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효용을 감소시킨다. 그 때문에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가 중개시장의 순기능을 효과적으로 담당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실증적 연구가 절실하다.
이와 대조적인 구글은 지난 2005년부터 두 번에 걸쳐 특허방식을 통해 구글뉴스 편집원칙(=시장 중개 신호)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2003년 출원 및 2005년 공개된 1차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 그리고 2009년 출원 및 2012년 공개된 2차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내려받기)을 살펴보면, 구글뉴스의 경우 뉴스 목록의 순서가 어떤 기준에 의해 정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뉴스목록 순서 변화의 가능성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GoogleNewsAlgorithm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은 위 그림처럼 총 13개 평가 영역으로 구별되어 있다. 13개 평가 영역 중 흥미로운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1. 언론사의 생산량: 특정 언론사가 일정 기간 생산한 뉴스 및 기사의 양이 많을수록 해당 언론사는 높게 평가된다. 이 기준은 중복 기사는 제외한다고 하여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흐름에 맞춰 기사를 대량 생산하는 언론사가 높게 평가될 수 있다는 단점을 포함하고 있다.
2. 뉴스 및 기사의 길이: 단어 수가 많은 기사를 생산할수록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두세 문장으로 구성된 속보 기사를 많이 생산할수록 또는 연예인 사진 한 장에 설명 문장 달랑 하나 있는 기사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3. 언론사 보도범위의 중요성: 다소 모호한 기준이다.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사건을 적시에 다양한 각도에서 기사화할 경우 높은 점수를 받는다. 문제는 사회적 화제 또는 중요성을 어떤 기준에서 판단할 수 있는지 구글이 공개한 문서를 통해서는 알 길이 없다.
4. 속보 뉴스 출처: 사실 확인 없이 일단 쓰고 본다는 의도로 기사를 생산할 경우 감점을 받을 수 있다. 한편 화제가 된 사건을 다룬 기사를 모두 모아놓고(clustering) 개별 기사를 생산된 순서로 나열하고 개별 기사의 중복성을 점검하면, 첫 번째로 속보를 전한 언론사가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자연스럽게 (현장)기자 자원이 풍부한 대형 언론사에 이로운 평가기준이다.
5. 뉴스이용 양식: 구글 검색순위 알고리즘인 페이지랭크(PageRank)의 평가항목을 말한다. 개별 기사가 다른 기사 또는 블로그에 많이 인용(=링크)될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6. 언론사 신뢰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개별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 설문조사, 언론수용자 인식조사 등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가 반영된다.
10. 보도 대상의 실명성: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장소, 조직 등이 실명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현장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명성 강조는 구글의 유익과도 부합한다. 실명이 빈번하게 등장할수록 시맨틱 웹(semantic web)을 구현하는 검색이 더 쉽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1. 언론사 보도범위의 크기: 대형 언론사에 매우 유리한 평가항목이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다루는 주제 영역이 폭넓을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 뉴스 및 기사의 양식: 오타 있는 기사를 다수 생산할수록, 틀린 문법의 기사가 많을수록 나쁜 평가를 받는다. 놀라운 점은 이를 평가할 수 있는 구글의 기술력이다.
구글뉴스의 순위 알고리즘에 따르면 대형 언론사가 선호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통 언론사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충격’, ‘경악’, ‘몸매’, ‘미모’, ‘물오른’ 등 뉴스 소비자의 클릭에 몰두하는 언론사 또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기사 생산의 나침판으로 삼고 있는 언론사는 충분히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네이버 및 다음이 구글뉴스처럼 기계적 편집으로 편집 방법론을 바꿀 이유는 전혀 없다. 구글뉴스가 따라야 할 모범이다라고 말할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설령 기계적 편집[5]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및 ‘실시간 이슈’ 또는 뉴스 검색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그리고 혹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가 기계적 수집 및 편집 방식을 도입한다고 하여도,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이 한국 뉴스시장에도 유의미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다.
그러나 뉴스 공급과 뉴스 소비를 중재하는 사업자는 시장 마찰을 최소화하고 공급자가 소비정보를 얻고 소비자가 공급자를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제공할 시장의 책무 및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있다.
1. 두개의 서로 다른 가치 개념을 구별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①과 ②로 구별하고 있다.
2. 파하드 만주가 뉴스소비의 편협성을 설명하는데 활용한 이론인 ‘선택적 노출’ 또는 ‘선택적 인지’는 ‘적대적 매체 효과(hostile media effect)‘ 또는 ‘적대적 매체 지각(hostile media perception)’과 유사한 개념이다. 적대적 매체지각에 따르면,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는 뉴스가 공정하고 반대 입장의 뉴스는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3. 하버마스를 통해 대중화된 개념인 공론장을 뜻하는 독일어 표현은 <Öffentlichkeit>다. 이는 영어 <Public Sphere>로 번역되었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공론장>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독일어 ‘Öffentlichkeit’는 형용사 ‘Öffentlich(→public)’에 명사형 접미사 ‘-keit(→-ness)’가 결합된 단어다. 독일어 <Öffentlichkeit>는 특정 공간 또는 특정 매체을 매개로 형성된 여론(publich opinion)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제프 자비스(Jeff Jarvis)는 독일어 <Öffentlichkeit>의 적절한 영어표현으로 <Public Parts>을 제안하고 있다. ‘공론장’은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되는 특정 부분(!) 여론 뿐 아니라, 개인 및 집단의 생각 또는 의견 등이 표현되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요소 및 환경의 총합이며, 복수의 집단 내부 및 집단 사이에서 진행되는 대화가 구조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월드와이드웹의 공론장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웹의 구조와 특징, 웹에서 정보가 유통 및 확산되는 과정, 웹에서 지식이 누적되고 진화하는 특성 등에 대한 이해와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4. ‘감히 현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용기 (라틴어: Sapere Aude, 영어: Dare to be wise)’는 칸트가 1784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계몽주의의 핵심이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존재하는 기만, 속임수, 편협, 무비판 등 인간의 사고를 옥죄는 끝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고자 하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북돋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과제이다.
5. 기계적 편집 원칙, 다시 말해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마틴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술의 본질은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니”며, “기술은 (인간이 세운)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동시에 “기술은 인간 행위”이다.(Heidegger, 1954). 따라서 뉴스 순위 알고리즘은 구글 뉴스처럼 자동화되어 작동하는 편집 원칙일 수 있고, 또는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처럼 중개편집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세운 기준일 수도 있다.
참조한 글
파하드 만주, 2011, 이기적 진실, 비즈앤비즈
Arendt, Hannah, 1996,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München 1996, p. 72
Adorno, Theodor W. / Dahrendorf, Ralf / Pilot, Harald / Albert, Hans / Habermas, Jürgen / Popper, Karl R., 1969, Der Positivismusstreit in der deutschen Soziologie, pp. 71-75
Franklin, Bob, 2008, The Future of Newspapers, in: Journalism sStudies Vol. 9 (5), pp. 630–641
Heidegger, Martin, 1954, Die Frage nach der Technik, München
Overholser, Geneva, 2005, On Behalf of Journalism. A Manifesto for Change, Annenberg Foundation/Annenberg Public Policy Center, University of Pennsylvania, http://editor.annenbergpublicpolicycenter.org/wp-content/uploads/OnBehalfjune20082.pdf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The state of the News Media
Schiffrin, Anya (ed.), 2011,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 The New Press, New York / London
Starkman, Dean, 2011, Power Problem, in: Schiffrin, Anya (ed.),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 The New Press, New York / London, pp. 37–53
Stelter, Brian, 2008, Finding Political News Online, the Young Pass it On, In: The New York Times (2008년 3월 27일)
Stiglitz, Joseph E., 2001, The media and the Crisis: an Information Theoretic Approach, In: Schiffrin, Anya (ed.),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 The New Press, New York/London, pp. 22-36.
Weber, Max, 1988, Die ‘Objektivität’ sozialwissenschaftlicher und sozialpolitischer Erkenntnis, in: Winckelmann, J. (ed.),  Gesammelte Aufsätze zur Wissenschaftslehre, Tübingen